어제 우연히 네이버 서비스 기획자님의 강의를 들었는데,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서비스 기획하면 많은 사람들이 역기획을 얘기하곤 한다. 역기획은 무엇이다 라는 정의나, 어떻게 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다. 물론 나도 그런 사람중의 하나였고, 역기획이라고 하는 걸 시도해본 적은 있다.
그러나 어제 기획자님의 강의를 보고 처음으로 "역기획을 왜 하는데? 그걸 해서 얻고 싶은게 뭔데?" 라는 질문을 나 스스로 하게 되었다.
나는 어쩌면 "역기획을 하면 기획을 잘하게 될까봐, 또는 이걸 포트폴리오에 쓸 수 있을까봐" 쯤으로 목적을 삼고 있었던 것 같다.
혹시나 내가 까먹을까봐 나는 여기에 역기획의 본질적인 목적을 써보고자 한다.
만약 누군가가 갑자기 자동차를 만들어보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무엇부터 할 것 같은가?
지금 현재 나와있는 자동차 회사의 매출을 알아보거나, 자동차의 외관이 어떻게 생겼는지 등등을 알아볼 수도 있겠지만
이건 자동차의 기능적인 측면을 충족하고 나서 고민해도 될 나중의 문제이다.
내 생각에 여기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기존의 자동차를 "분해" 해보는 일일 것 같다.
자동차를 만들어야 하는데 나는 현재 자동차가 어떤 구조로 어떻게 구성됨으로써 바퀴가 굴러가는지, 조명을 켜는지, 멈출 수 있는지 등등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자동차가 기본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져있는지를 분해해보고 이를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는다면 정말 기본적인 기능의 자동차는 커녕, 자율주행 자동차는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역기획의 본질적인 의미가 나온다. 역기획이라는 건 서비스를 일일히 "왜? 이렇게 만들었지?" 라는 의문을 제기해가며
그 구성을 낱낱히 파악하고 그 분석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는데 적용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저 "이런 기능은 좀 불편한데?" "이 ui는 조금 이상한데?" 이런식으로만 역기획이 끝나버린다면 그저 자동차를 열심히 분해해놓고, "속도가 너무 느린데?" "자동차 컬러를 왜 이런식으로 칠했지?" 라는 비판만 하는 것과 동일하다.
역기획에서 추구하는 것은,
속도가 너무 느린데? -> 비슷한 종류의 다른 자동차들에 비해 속도가 느린데, 그 이유는 뭐지? 의도한건가?
자동차 컬러를 왜 이런식으로 칠했지? -> 회사가 추구하는 자동차의 이미지는 뭐지? 현재 자동차의 색깔은 이를 잘 반영한건가?
라는 식의 질문을 해가며 그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자 이제 역기획이 무엇인지 나 스스로 명확히 일깨워줬으니 이제는 진짜 프로덕트를 가지고 역기획을 해볼 차례이다.
오늘 해볼 역기획 프로덕트는 skt에서 최근에 출시한 "에이닷" 이다.
1. 서비스소개
- 에이닷은 SK 텔레콤에서 출시한 "일상 속의 친구" 컨셉의 음성대화형 AI 서비스
서비스의 주요 기능은 다음과 같다.
1) 에이닷과의 대화( 날씨,뉴스,운세 등의 정보 습득 및 자유형식의 대화)및 캐릭터 커스텀
2) 무료 게임,TV, 음악,AI사진편집과 같은 엔터테인멘트 기능
3) 루틴,일정관리, 길찾기 등 라이프 관리 기능
4) Q&A를 통한 커뮤니티 기능
2. 서비스 분석
2.1 서비스 비전&미션
아바타가 매일 고객과 만나 취향을 이해하고 다양한 상황에서 고객의 필요한 일을 대신하는 등 상호 소통이 가능한 사람같은 AI 서비스를 구현하겠다는 것. - 유영상 skt대표의 인터뷰 중(CES 2022) -
'A.' 고객의 소중한 시간을 되돌려주는 '일상의 디지털 메이트'
- 이현아 SK텔레콤 AI&CO 인터뷰 중(2022.05.16) -
"에이닷은 고객과 함께하며 같이 성장해 나가는 서비스를 지향한다"며 "고객의 일상을 함께하며 모바일 환경에서 고객 대신 다양한 일을 처리해 주는 일상의 디지털 메이트가 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 이현아 SK텔레콤 AI&CO 인터뷰중(2022.05.16)-
핵심 키워드: #이해 # 친구 #상호 소통 # 함께 성장 # 효율적인 생활
=> 고객의 일상에 항상 함께하며 소통함으로써, 그들이 더 나은 성장을 하도록 돕는 친구를 제공하자
2.2 서비스 목표
- 에이닷과의 대화를 통해, 사용자의 다양한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경험
- 만족스러운 해당 경험을 통해 더욱 잦은 소통이 이루어짐
- 잦은 소통은 개별 사용자에 대한 더욱 상세한 정보를 축적하게 함
- 개별 사용자별로 맞춤화된 일상 Assist 서비스를 제공
- 이는 다시 에이닷과의 잦은 소통을 가능하게 하여 선순환이 이루어지게 함
2.3 서비스 전략
거대언어모델(GPT-3) 기반으로 일상적인 대화와 고객이 요구하는 특정 작업의 처리를 자연스럽게 결합
음원 앱 플로(FLO), OTT 서비스 웨이브(wavve),티맵(TMAP), 캘린더, 전화문자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연결
- 뉴데일리 경제뉴스/ "유영상 SKT 대표 '아이버스' 윤곽, AI 에이전트 '에이닷' 공개" 기사 중 -
=> 고도화된 자연어 처리 및 감정분석 모델을 통해 더욱 사람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 "친근한" 경험 제공 (+ 캐릭터 커스텀)
=> 다양한 서비스를 하나의 플랫폼에 결합해 "간편하고" "효율이 극대화 된" 경험 제공
2.4 서비스 구조
이 서비스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서비스 구조라는 게 엄청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개인 사용자로써 서비스를 이용하는 흐름(?)은 누구나 써보면 알 수 있을테니 내가 인상깊었던 기능 하나하나를 어떻게 기획했을 지 분석해보고자 한다.
1) 메인 기능 - 에이닷과의 음성 및 텍스트 기반 대화
사실 에이닷의 모든 기능들은 이 메인화면에서 어디로든 접근이 가능하다.
(챗봇이라는게 원래 그런 역할로 존재하는 것이니 당연한 거긴 하다만..)
에이닷은 음성과 텍스트 모두로 사용자와 대화를 하게 되어있고, 이 메인화면에서 에이닷 서비스가 진행중인 이벤트 혹은 사용자에게 새로운 대화 토픽을 먼저 제안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예시 답변을 플로팅 버튼으로 사용자가 선택하거나, 직접 답변을 하면 된다.
내 생각에 플로팅 버튼을 여러가지 예시들로 마련한 이유는 다양한 서비스로의 진입점들을 만들기 위해서 인 것 같다.
챗봇의 특성상 신규 사용자는 챗봇에게 어느 정도의 "기대치"를 가지고 있다. chat GPT가 나온 마당에, 어떤 말이든 잘 알아듣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만약 에이닷이 사용자의 발화를 못 알아들었다면? 사용자는 몇 번 더 시도를 해보겠지만, 서비스에 대한 신뢰가 처음과는 같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이용 목적이 없는 사용자는 이렇게 단순 테스트를 거쳐 서비스를 이탈하기가 쉽기 때문에, "우리 이런이런 서비스 있어~" 하고 플로팅 버튼을 마구 띄워놓는 것이다. 실제로 서비스를 써보면 알겠지만, 여러 기능들을 체험해보라고 전혀 관련성이 없는 내용(ex. 근처 약국 문 연 곳 어디야? 올해는 무슨 해야? 주말 부산 날씨 알려줘 등등) 의 버튼들이 함께 보여지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현재 진행중인 이벤트는 사용자가 정말 다양한 혜택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나치기 쉽기 때문에 이러한 플로팅 버튼과 함께 메인에서 광고를 하는 건 유입을 늘리는 데 탁월할 거라고 생각한다.
2) 루틴 기능 - 사용자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루틴 제공.
내가 에이닷 서비스에서 정말 좋다고 느꼈던 기능이다. 단순히 엔터테인먼트로써의 서비스가 아니라, 사용자와 함께 성장하는 메이트로써의 목표가 드러나는 기능인 것 같다. 크게 1. 추천 루틴과 2. 내 루틴 으로 나뉘어 있는데, 처음 이러한 루틴을 쓰는 사용자를 위해 "데일리, 위클리, 관심사, 건강' 이렇게 네 가지 카테고리로 루틴을 추천한다.
나는 출근 준비 루틴을 써봤는데, 막 지키지도 못할 모닝 독서.. 요가 이런게 아니라 진짜 찐 한국인을 위한 루틴들만 모여 있었던 것 같다. 사용자가 루틴 시작 시간을 설정한 후 해당 루틴을 저장하기만 하면 설정 끝이다.
대부분의 루틴 관련 어플은 사용자한테 유익하라고, 이것저것 좋은 루틴은 다 끌어와서 수정할 부분이 많아 사용자를 귀찮게 한다. " 응원의 말+ 오늘 날씨 + 미세먼지 + 음악" 이 네가지는 진짜 직장인한테 필수 아니냐며.. 좀 감동스럽다.
여기서 가장 놀랐던 점은 바로 "플로와의 연동" 이였다. sk 텔레콤은 플로라는 음악 플랫폼을 가지고 있는데, 에이닷을 쓰면 월 30곡? 이용권을 준다. 에이닷을 쓰면서 갑자기 다른 음악 앱을 쓸 필요없이, 그냥 루틴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용이 되니까 번거로움이 줄어드는 거다. 이 기능에서 가장 크게 놀랐던 게 대기업의 독자적인 "유니버스 구축" 이다.
요즘 뜨고 있는 서비스들의 특징은 막 때려넣었다는 거다. 대표적으로 노션을 보면 구글독스, 지라, 깃허브, 피그마.. 등등 IT 업계에서 일한다면 필수적인 서비스들을 노션이랑 모두 연결해서 쓸 수 있게 해놓았다. 오픈 api가 넘쳐나는 시대에 이러한 연결성은 당연한 것 아닌가 라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런데 오픈 api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누구나 해당 서비스를 쓸 수 있지만 해당 서비스에 대한 영향력이 우리 서비스에 미치는 파급력이 엄청 나다는 거다.
만약 에이닷에서 플로가 아니라 애플 뮤직을 썼다고 가정해보자. 우선 애플 뮤직을 우리 서비스에서 제공하기 위한 비용 지출은 지속적일 거고, 그 쪽에서 가격을 인상해버리면 우리 서비스의 운영에도 차질이 생긴다. 또 애플 뮤직에서 어떤 이슈가 발생했다? 그 말은 즉 우리 서비스 이용자도 해당 이슈로 인한 불편을 느끼고 결론적으로 서비스를 더 이상 이용하지 않는데까지 이를 수 있다. 그렇기에 가급적이면 자체적으로 앱들을 구축하고 연결하는게 베스트이다. (구글 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게 기술, 돈 ,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결국 이런건 대기업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에이닷은 skt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자체적인 음악 앱인 플로를 연동시켰고 이는 사용자로 하여금 엄청난 편의를 느끼게 한다. 앞으로 생겨날 기능들도 이러한 연결을 통해 이루어진다면, 사용자는 skt의 유니버스에서 빠져나가기 힘들지도 모른다.
(마치 애플 제품을 하나 사면 다른 부가 제품들을 다 애플껄로 사고 싶은 것처럼..ㅋㅋㅋ)
글이 너무 길어져서 다음 글에서 에이닷 서비스의 개선 포인트가 있을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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